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까치가 방문을 쪼아대는 소리에
단잠을 깨었다.
눈을 뜬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잠시 몸을 뒤척이다
화들짝 놀란 듯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문을 더럭 열고는
집밖으로 나왔다.
부엌 아궁이에 땔감을 밀어 넣던 하녀가 놀란 눈으로
주인을 건네다 보았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하녀에게 서둘러 조반을 차리라
이르고는 뒤꼍으로 돌아가 허푸허푸 세수를 마쳤다.
하녀가 차려다 준 개다리 조반상을 받자마자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바삐 조반을 들었다. 그리고는 역시 무엔가 쫓기는 듯
화급히 행장을 차리더니 잰걸음으로 대문 밖을 나서는 것이었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가 낯선 땅 조선으로 들어온 지도 어언 1년여 세월이
흘렀다.
그는 제스윗 교단의 선교사로 저 유명한 이라구파지오네가 동북아에서의
임기를 훌륭히 마치고 귀단(歸團)함에 따라 그 후임으로 파견된
젊고 유능한 선교사였다.
조선으로 오기 전 그는 이미 중국에서 3년간의 임기를 마쳤으며
그가 거둔 충실한 성과에 대해 교단에서는 만족의 표시를
보내왔다.
조선으로 들어온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3개월 가량 궁에 머무르며
왕자들에게 서양의 문물과 학문을 전하는 일, 즉 가정교사를
맡았다. 물론 직분에 충실하여 기독교리를 왕자들에게 심는 일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하지만 3개월 여가 지나자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왕에게 1년간의
말미를 구해 궁을 벗어났다. 선교활동을 이유로 하였지만 사실은
지방 곳곳을 다니며 여러 풍물을 조사해보고픈 개인적인 욕구가
그를 내내 흔들어댔기 때문이었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선교사 생활을 하며 얻은 지식과 경험을
수집해 책을 내고 싶어했다. 이미 선배들에 의해 중국에 관한
선교담을 담은 서적은 몇몇 출간된 바 있고 레미톨레이마이어스 역시
이들을 밤을 도와가며 애독하곤 했던 것이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먼저 경기를 거쳐 중남부로 남하하기로
계획을 세웠고 그 첫 여정으로 이레 전 이곳 용인을 찾았다.
왕으로부터 받은 패(牌) 덕분에 그는 어느 곳을 가든지 관리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을 수 있었고 지금 머물고 있는 집도
고을 사또의 주선으로 한 유지의 사택을 거저 빌린 것이었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종종걸음을 치며 어디론가 부지런히 향하고 있었다.
몇 걸음마다 회중시계를 꺼내어 보는 것으로 미루어 무언가 중요한
약속을 앞두고 있는 듯 보였다.
한참을 걸음반 뜀반으로 길을 가던 레미톨레이마이어스가 어느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그의 얼굴을 알아 본 두 명의 나졸이 문을 열어 그를 안으로 인도했다.
그곳은 고을의 행정을 맡아보는 관아였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나졸로부터 이방에게 인도되었고, 이방은 그를 다시금
사또의 내실로 이끌었다.
사또는 마침 자신의 방에서 누군가와 두런두런 한담을 나누고 있던 터였다.
이방이 레미톨레이마이어스의 내방을 문밖에서 고하자 잠시 대화가 멎더니
이내 안으로 드시게 하라는 말이 들려왔다.
사또는 이왕의 손님을 잠시 물린 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를 맞았다.
"어서 오시오. 그래,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으시었소?"
"아주 편리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 덕분에"
사또는 지긋한 눈으로 조선말이 썩 유창한 이방인을 건네다 보았다.
잔뜩 야윈 얼굴 위를 덮은 수북한 구렛나루. 옥벼루를 연상케 하는
파란, 그러나 깊고 지적인 눈빛.
책임감과 의지가 강해 보이는 단단한 턱.
"그래, 댁께서는 조선의 형법제도에 관해 관심이 있으시다구요?"
"그렇습니다. 사또"
사또는 며칠 전 아전을 통해 레미톨레이마이어스로부터 전갈을 받아놓고 있었다.
그 내용은 각국의 형법제도, 특히 죄인을 다스리는 형벌제도에 관해
자신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대해 학술적인 저술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미 관찰사로부터 이 자에 대해 모든 도움을 아끼지 말아달라는
편지를 받아놓은 터라 이 벽안(碧眼)의 사내가 요구하는 일을
굳이 마다할 까닭도 없었다.
"그럼, 그러시구료. 마침 오늘 재판이 있으니 함께 참예하도록 합시다."
"그저 사또의 호의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두 사람이 찻 상을 마주하고 이국의 풍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형방이 재판 시각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사또를 따라 재판이 열리는 대청으로 나섰다.
사또가 대청 위에 마련된 재판석에 좌정하자 곧 재판이 시작되었다.
재판은 이방이 오늘 재판을 받을 피고들의 죄상을 큰 소리로 읽어 내리면
이어서 피고들의 변호가 있었고, 이를 듣고 사또가 즉결로 판결을
내리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피고는 모두 5명이었다.
술자리에서 멱을 잡고 싸움판을 벌인 주정뱅이,
저자에서 굴비 한 두름을 훔치다 잡힌 계집아이,
나랏세 보리 서말을 내지 못해 끌려온 꾀죄죄한 노인.
이들에 대한 재판은 채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피고들은 제각기 변론에 열을 올렸으나 사또는 이를 코끝으로
흥, 흥 듣더니 그나마 중간에서 말을 자르곤 서둘러 판결을
지어버렸던 것이었다.
재판이 끝나자 사또는 레미톨레이마이어스에게 인사를 건네곤
다시 내실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형방이 레미톨레이마이어스에게 다가와 관아 뒤꼍으로
동행할 것을 전했다. 곧, 죄인들에 대한 체형(體刑)이 이루어질
것이란 말이었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형방을 따라 몇 개의 소문(小門)을 지난 뒤
관아 뒤꼍에 이르렀다.
그곳은 관아 뒷담으로 둘러 싸여진 널찍한 장소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죄인들을 가두는 옥사가 있었다.
서너명의 나졸들이 담밑에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다가
형방과 레미톨레이마이어스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먼지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방이 그들에게 무언가 지시를 하자 개중 건장한 나졸 두 명이
형장 한켠으로 밀어두었던 형틀을 끌고 나왔고, 나머지는
옥사로 들어가 죄인들을 압송해 왔다.
형틀은 기묘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마치 십자가를 수직으로 넘어뜨려 놓은 모양으로
서양에서 쓰이는 형틀과는 사뭇 다른 감이 있었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중국에서도 죄인들에게 태형이
가해지는 장면을 목격한 바 있고, 또 충분히 선배들의
서적을 탐독했기 때문에 동북아에서의 태형 방법을
모르지는 않았다.
서양에서는 엑스자로 된 나무 형틀이나 태주(笞柱)에
죄인을 묶어놓고 상반신을 벗긴 뒤 등뒤에 채찍질을
가하는 것이 일반적인 체형의 방식이나
동양에서는 하체를 노둔(露臀)시킨 뒤 매로 볼기를 때리는 것이
체형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윽고 세명의 죄인이 나졸들에 의해 끌려져 나왔다.
형방은 레미톨레이마이어스에게 이들은 달포 전에 재판을 받은 이들로
오늘 매를 맞은 후 다시 수일간 옥에서 지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죄인들을 돌아다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명 중 두명이 여인네가 아닌가.
원래는 흰색으로 추정되는, 그러나 지금은 검붉은 흙투성이 옷을
아무렇게나 걸친 두 여인네는 머리마저 산발하여 보기에도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형방이 소매춤에서 판결문을 꺼내어 소리내어 읽었다.
이에 먼저 남자가 체형을 받게 되었으며 여인네들은
그 나중이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남자는 백정으로 동네 아녀자를 희롱한
죄를 물어 잡혀온 자였다.
본래 백정이란 조선에서는 최하층 천민으로
같은 죄를 짓더라도 그 벌이 한층 위중하였다.
사내는 태형 50도를 맞기로 되어 있었고, 나졸들은
이방의 낭독이 끝나자 사내의 발에 묶여 있던 착고를
풀더니, 사내를 맨 바닥에 엎어뜨리는 것이 아닌가.
"왜 형틀을 사용하지 않는가?"
의아해하는 레미톨레이마이어스에게 형방은
백정같은 천민은 형틀에서 죄를 다스리지 않고
맨 땅바닥에 엎어놓고 매를 친다고 알려주었다.
사내는 이러한 대접에 익숙한지, 아니면 이전에도
수 차례 매질을 당해본 경험이 있는지
별다른 반응없이 고개를 떨구고 바닥에 엎드렸다.
곧이어 어깨 힘이 좋아 보이는 나졸 한명이
나무로 만든 통에서 매를 하나 골라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일부러 겁을 주려는 듯 엎드려 있는
죄인의 뒤통수 위에서 휘익 휘익 허공에 매를
휘둘러 보였다.
이 소리를 들은 사내가 움찔했다.
형방이 나졸을 불러 레미톨레이마이어스에게 매를 건네
주도록 했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가 보니 매는 대나무로 만든 것으로
회초리라 하기엔 썩 굵어 보이는
것이었다. 서양에서 학생들을 벌줄 때 사용하는
등나무 회초리에 비해서는 유연성이 떨어지나 대나무 특유의
강도에서 나올 타력은 등나무 회초리 못지 않은
통증을 맞는 이에게 안겨 줄 것이다.
다른 나졸이 사내에게 다가가 바지춤을 발목께까지
치켜내리자 매를 든 나졸이 형방을 바라보았고, 형방이 눈짓하자
곧 태형이 시작되었다.
사내는 확실히 이러한 매질에 익숙해 보였다.
듣기에도 소름끼치는 매의 잔향과 타격음이 장내를 울렸지만
사내는 꿈쩍도 않고 매질을 버텨내는 것이었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후에 백정과 같은 천민들은 이처럼 관아에
끌려와 매질을 당하는 일이 드물지 않을뿐더러 종종 양반가에서
가하는 사형(私刑)을 당하는 일도 있어 매맞는 일에는 이골이
난 자들이라는 것을 형방에게 전해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매가 스무대를 넘어서자 이 사내의 인내력도 한계에 도달한 듯
보였다.
스물 석대째의 매에 사내는 폐부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나오는 듯한
신음소리를 뱉아내었다.
매가 서른대에 이르자 사내는 드디어 주위 사람들에게 애절하게
자비를 구하기 시작했고 그 목소리는 곧 다음 매 소리에 묻혀 비명으로 산화하고
말았다.
마침내 서른 일곱 대에서 사내는 정신을 놓았다.
나졸이 매질을 멈추고 형방을 바라보자 형방은 다른 나졸을 시켜
물 한동이를 죄인에게 끼얹으라 시켰다.
물 한동이를 뒤집어쓴 사내가 한동안 움찔거리더니 다시금 정신을
차렸다. 그리곤 역시 죽어 가는 목소리로 형벌에 대한
자비를 애원했다.
그러나 형의 집행에 자비가 있을 수 없는 법. 죄인에게는 아직도
열석대의 태형이 남아 있었다.
결국 50도의 태형이 모두 끝났다. 나졸들 둘이 맥을 놓고 있는
사내의 바지춤을 거칠게 끌어올리더니 양쪽 어깨를 둘러메곤 옥사로
향했다.
사내가 떠난 자리에는 곳곳의 혈흔과 함께 사내의 몸부림으로
인한 거친 쓸림 자국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매질로 인한 공포와 통증 탓에 바닥에 오줌마저 지려놓은
상태였다.
이제 두 여인네에 대한 태형이 집행될 차례였다.
형방은 먼저 첫 여인에 대한 판결문을 낭독했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곧 형틀에 오를 첫 번째 여인을
바라보았다.
비록 산발한 검은 머리로 대부분의 얼굴이 가려져 있었지만
여인은 놀라우리만치 미색을 띠고 있었다.
나이 역시 제대로 가늠키 어려웠지만 20대 중반은 채 넘지
않아 보였다.
아니나다를까 여인은 이 지방의 기생이었다.
죄목은 절도.
하룻밤 수청을 든 손님의 전대에서 돈을 훔친 죄였다.
마침 그 자는 이 지방에서는 꽤 이름이 높은 유지의 자제로
기생의 못된 짓거리에 대해 주인을 불러 한바탕 호통을 친 후
하인을 시켜 바로 관아에 고하게 했던 것이었다.
이 기생에게는 태형 30도가 내려져 있었다.
형방의 판결문 낭독이 끝나자 나졸 하나가 여인의 머리채를
휘휘 손에 감아 끄잡아 내더니
거침없이 형틀 위에 엎어뜨렸다.
젊은 여인네가 볼기를 맞는 일은 조선에서도 그리 자주있는
광경은 아닌 듯 주변의 나졸들이 쿡쿡 웃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나졸 하나가 아까 사내의 얼굴에 끼얹었던 동이에 새로운
물을 채워 가지고 나타났다.
아마도 매질을 견디지 못한 아낙이 혼절할 것을 대비해
미리 가져다 놓는가 보다 ... 싶었으나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곧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엎어진 여인의 손목과 발목, 허리를 형틀에 단단히 묶은
나졸은 여인의 치마를 벗겨내려 속옷을 남기더니 그 위에
물 한동이를 촤악 끼얹는 것이 아닌가.
형방은 레미톨레이마이어스에게
"조선은 동방예의지국이라오. 따라서 여인네들의 죄를 다스릴 때에는
둔부를 노둔시키지 않고 이처럼 속곳을 입힌 뒤에 매를 치지요."
덧붙여 물을 뿌리는 이유는 속곳이 매질 와중에 날리어 둔부가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요, 이처럼 매질을 가하는 방법을 이르러 물볼기라
한다고 하였다.
형은 지체없이 집행되었다.
따 - 악
첫 번째 매에 여인은 벌써 비명을 질러댔다.
따 - 악
"아아악 -"
따 - 악
"아흡 -"
매는 정확히 여인의 둔부에 떨어졌다. 가끔은 허벅지에 떨어질 때도 있었으나
그것은 형리가 일부러 겨냥한 듯 보였고, 태형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허벅지를 때리는 것은 어느 정도 허용이 되는 것 같았다.
따 - 악
"아아아 - 나리, 제발 …"
따 - 악
"아흐흐 -"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물에 젖어 여인의 둔부에 착 달라붙어 있는 속곳 사이로
선명한 매 자국을 볼 수 있었다. 손가락 두께 만한 푸르죽죽한 멍이
허여멀건한 여인의 볼기를 하나 가득 유린해 놓고 있었다.
매가 스무대를 넘어서자 속곳 밖으로 핏빛이 내비치기 시작했고 여인의
단말마는 더욱 처절해져 갔다.
스물넉대째에서 두 번째 매가 부러져 나갔다. 형리는 잠시 형을 멈추고
세번째 매를 골라 들었다.
따 - 악
"제 , 제발. 나리. 그만, 그만 …"
갑자기 매질이 멈췄다. 30도의 태형 집행이 모두 끝난 것이었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이 모든 것을 노트에 일일이 메모를 하고
또 솜씨를 발휘해 스케치를 해 나갔다.
'주여, 저의 이런 작업이 부디 이 땅으로부터 죄악을 몰아내는 데에
미력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하소서 … '
여인을 형틀에서 내리기 전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사이로 간간이
여인의 흐느낌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이윽고 형리들이 여인의 몸에서 매듭을 풀어낸 뒤 여인을 옥사로
끌고 갔다.
여인은 제대로 설 수조차 없는 지경이어서 나졸들은 거의 처들어
업다시피 여인들 둘러메야 했다.
형리에게 끌려가는 여인의 속곳 뒤쪽에서는 붉은 선혈이 보였고,
이는 발목께까지 흘러 있었다.
이 모든 진행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마지막 죄인은 거의 넋이
나간 듯 보였다. 남이 매맞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간접적인
고통을 느끼는 듯 했다.
'조선에는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 라는 속담이 있다던데 과연 그렇겠군.'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형방이 마지막 죄인을 향해 읽어 내리는 판결문의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죄인은 이미 지아비를 지닌 몸으로 그 동안 외간남자와 수 차례 … "
듣고 보니 이 여인은 이미 혼인을 한 유부녀로 외간남자와 간통을 하다
현장에서 발각된 죄인이었다. 남자는 남편과 마을사람들에 의해 심한
몰매를 맞은 후 외지로 도망을 놨고, 여인은 남편에 의해 관아에 고발이
된 상태였다.
여인에게 내려진 판결은 곤장 40도. 대나무 회초리가 아닌 버드나무로
깎아 만든 넓적한 몽둥이를 사용해 볼기를 맞기로 돼 있었다.
조선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간통을 대단한 중죄로 간주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여인 역시 경범죄(輕犯罪)에 대해 사용하는 태(笞) 대신
군율을 어긴 군인이나 나라의 큰 죄인에게나 쓰이는 곤장으로
매를 맞게 된 것이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앞서 기생의 경우와 달리
물볼기가 아닌 맨 볼기에 매를 맞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간통죄는 중죄인만큼 여인네들에게도 남자와 같이
맨 볼기에 매질을 하게 돼 있다는 것이 형방의
설명이었다.
나졸들에 의해 형틀로 끌려 나오던 여인은 30대 중반쯤 돼
보였으며 제법 풍만한 몸집을 하고 있었다.
조혼풍습이 있는 데다 다산을 미덕으로 삼는 조선의 여인인 만큼
이 여인 역시 여남은 명의 아이를 출산했을 것이고
처녀들과는 달리 가슴이며 엉덩이의 육덕이 푸짐한
중년의 티가 물씬 풍겨 나왔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화들짝 놀라 다시 노트에 눈길을 주었다.
그리고 간통죄에 대한 조선의 형제(刑制)에 대해 기입해 넣었다.
형은 신속히 집행되었다.
나졸은 다소간의 반항을 하는 여인의 머리채를 휘어 감더니
이전 기생의 경우보다 더욱 거칠게 여인을 형틀 위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곤 역시 여인의 손목과 발목, 허리채를 형틀에 단단히
묶어 고정시켰다.
여인은 쉰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자신을 고발한 남편에 대한 거침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성말라 보이는 나졸 한명이 여인의 뺨을
세게 때렸고 이로 인해 여인의 욕설은 사그라져들었다.
이윽고 다른 나졸 한명이 곤장 여나믄 개를 끌어안고 와
바닥에 우르르 쏟아내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여인이 뭔가 알 수 없는 말을 웅얼
거리더니 머리를 떨궜다.
마침내 형을 집행할 형리가 앞으로 나섰다.
이미 날은 해가 중천에 떠 따가운 가을 햇살이
형장을 비추이기 시작했고,
형리는 더운지 웃옷을 벗어 주변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다.
그리고는 동료가 부려놓은 곤장들 중에서 제법 튼실해 보이는
놈으로 하나를 골라 쥐었다.
그러는 사이 다른 나졸 하나가 여인에게 다가가 치마를 벗겨 내렸다.
때투성이의 너저분한 겉치마가 내려지자 역시 막걸레처럼 구깃구깃한
속곳이 드러났고, 형리는 서슴지 않고 이마저 걷어내버렸다.
이로써 여인의 둔부는 완전히 노출돼 버렸다.
비록 오랜 시간동안 제대로 씻지 못해 그다지 청결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형장의 뭇 사내들에겐 눈부시리만큼 육덕이 있는 둔부였다.
잠시 후면 거무죽죽한 피멍과 혈흔을 남기게 될 저 순결한 둔부를 대하고 있자니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안타까운 마음에 펜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형리가 곤장을 두손에 꼬나쥐고 여인의 오른편에 섰다.
형방이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보내자 형리는 곤장을 어깨 위로
한껏 올리고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범같은 기세로 여인의 둔부를 향해 달려들었다.
"에익 -"
따 - 악
"아흐흡"
첫 번째 곤장이 정확히 여인의 맨 볼기 위에 떨어졌다. 여인은 감히
고통을 참지 못하는 듯 보였으나 이를 사려물고 참아내었다.
철 - 썩
"으흐흐 -"
여인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고통을 떨쳐버리려 애쓰는 모습이
레미톨레이마이어스의 눈에 들어왔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차라리 이쯤에서 눈길을 거두고
당장이라도 형장을 떠나고 싶었으나
이런 기회가 또다시 주어지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고는 다시 형틀로 눈을 돌렸다.
"에에잇 - "
따아 - 악
"허읍 -"
확실히 곤장은 태(笞)에 비해 그 타격의 강도가 한결 세어 보였다.
채 열대의 매가 떨어지기도 전에 벌써 여인의 볼기 밑으로 혈흔이
보이기 시작했다.
태가 그 낭창한 유연성으로 피부를 파고드는 데에
아픔이 있다면
장(杖)은 이러한 태를 여나믄 개 이어붙여 매를 치는 격이었다.
불과 10여대의 매에 여인의 볼기는 더 이상 본래의 색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색되어 있었다.
특히 매가 겹치는 가운데 부분은 퍼렇다 못해 검은빛을 띠고 있었고
어딘가 볼깃살이 터졌는지 허벅지 사이로 피가 흘러 형틀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철 - 썩
"아아악 -"
마침내 여인의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고통을 참아내느라 악물었던 이빨 사이로 끊임없이 신음소리가
흘러 나왔고, 핏발 선 두눈에서는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따 - 악
"제발, 살려주십쇼. 쇤네가 죽을죄를 졌습니다요."
스무대의 매에 여인의 입에서 처음으로 애원성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법을 집행하는 형리의 손속에선 일말의
자비도 찾아볼 수 없었다.
따 - 악
"어이구, 나으리, 제발, 제 … 발"
따아 - 악
"허으윽"
스물 일곱 대째의 매에서 굵직한 곤장 하나가
부러져나갔다.
이를 기화로 첫 번째 형리가 밭은 숨을 몰아쉬며
물러서자 대기하고 있던 다른 형리가 새로운
곤장 하나를 꼬나들었다.
"계속 쳐라"
"에잇 - "
처얼 - 썩
"어흐흑, 흑흑"
여인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여인에게서는
남편을 저주하던 독기도, 이를 악물고 매를 참아대던
자존심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형장에는 다만 두터운 나무 판때기가 여린 인간의 피부를 찢는
파열음, 그리고 고통에 찬
비명과 신음만이 난무할 뿐이었다.
따악 -
서른대의 매를 맞은 여인의 둔부는 이제 더 이상 사내의
눈길을 모으던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만
거친 칼날 아래 난도질 당한 도마 위의 고깃덩이처럼
무참히 짓이겨져 있었다.
볼깃살은 이미 헤어져 온통 피칠갑을 두르고 있었고
그 중간 중간 거무죽죽하게 죽은 피부가 드러나 있었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묵묵히 이 모든 과정을 노트 속에
담았다. 마치 사진을 찍듯 머릿속 깊이 각인시키며
정신없이 노트 속에 그리고, 또 적어 넣었다.
이제 더 이상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여인의 모습에서 고개를
돌리고자 하지 않았다. 이미 그에게 있어 형틀 위의 여인은
보호받아야 할 나약한 아낙이 아닌, 그저 손방망이 아래
다져지는 고깃덩이에 불과했다.
'죄인은 벌을 받아야 하는 거다. 저 여인은 누가 보더라도
죄인이고 그에 상응한 당연한 벌을 받고 있을 뿐이다.
그 뿐이다.'
서른 세대째의 매에 여인은 고개를 떨궜다. 매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혼절을 하고만 것이었다.
한 나졸이 뜨악한 표정으로 다시 한동이의 물을 가져다
아낙의 얼굴에 쏟아 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쉽사리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형방이 여인에게 다가가 눈을 뒤집어 보더니, 여인의
뺨을 호되게 서너대 갈겼다. 그러자 여인은 가까스로
의식을 회복하는 듯했다.
"나으리들, 제발, 살려주십쇼. 이 매를 다 맞으면
쇤네는 죽습니다요. 쇤네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요."
여인이 다 죽어가는 소리로 애원했다. 그러나 형리는
매몰차게 소리쳤다.
"네년이 지아비를 두고 딴 사내놈과 붙을 때엔 의당
이런 꼴을 당하리라 짐직치 못했단 말이냐! 내 오늘
네년의 죄를 일벌백계로 다스려 추후 이런 일이 다시는
이 고을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
형방은 일어나 다시 형리에게 매질을 계속하도록
지시했다. 여인에게는 아직도 일곱 대의 장형이
남아 있었다.
형리가 다시금 곤장을 꼬나들었다.
여인은 허옇게 치켜뜬 눈으로 곤장을 쳐든
형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따악 -
서른 네 번째 매가 여인의 볼기 위에 다시
떨어졌다. 여인은 불에 덴 듯 비명을
지르며 형틀에서 몸을 빼내고자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단힌 새끼줄로
동여매어진 몸은 형틀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따악 -
"아아악 - 제발 "
형방은 매를 잠시 멈추도록 손짓했다.
그리곤 여인에게 다시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네년이 겪는 고통은 네년이 지은 죄에 비하면
십분지 일도 안되는 것이다. 우리 사또님이 워낙
인품이 넓으신 덕에 아량을 베푸시어 이 정도 매로
그치는 것이니 추후로는 결단코 이런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니라."
"예, 예. 알겠사옵니다. 나으리. 그저 쇤네
목숨만 …"
여인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비를 구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형은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형방이 신호를 보내자 다시금 형리가 앞으로 나섰다.
철 - 썩
"아흐흐"
형은 계속해서 집행되었다.
따아악 -
"어흐흑"
서른 일곱 대에서 또 하나의 곤장이 부러져 나갔다.
새로운 형리가 남은 세대의 법장(法杖)을 집행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그런데 또다시 형방이 형리를 저지했다. 그리고는
레미톨레이마이어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남은 법장은 선생께서 한번 손수 집행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형방의 제안에 번갯불을 맞은 듯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완강히 거절했다.
그러나 형방의 권유는 끈질겼다.
사실 형방의 제안은 사또가 전일 형방에게 은밀히 지시해
놓은 것이었다. 관찰사로부터 이 벽안의 선교사에게 적극 협조하라는
전갈을 받은 사또로서는 이번이야말로 지난 해 공물 소홀로
인한 징계를 면피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밤새 초롱불 아래서 고민한 끝에 징벌의 매채를
직접 이자의 손에 쥐어주어 보다 확실한 경험을 해보게
해주자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물론 법적으로 아주
하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상대는 이 나라 왕자의
선생이자 국왕으로부터 직접 패를 받은 세력가가 아니던가.
"이런 기회는 다시는 없을 것이요. 선생은 책을 쓴다 하니
직접 한번 경험을 해봐야 더욱 좋은 글이 나올 것이
아니겠소이까. 이는 우리 고을 사또의 큰 배려이니
부디 저어하지 마시구려."
형방이 어서 매채를 쥐라 재촉했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한참을 매를, 그리고 형틀에 묶인
불쌍한 아낙을 번갈아 돌아보다 결국 마음을 굳혔다.
"한번 해보기로 하지요."
"잘 생각하셨소이다."
형방이 주름진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형리를 불러
곤장 하나를 골라 레미톨레이마이어스에게 가져다
주게 하였다.
그런 뒤 형리로 하여금 매질에 대한 기본적인
동작을 설명하도록 지시했다. 형리는 곤장을 들고
직접 허공에다 휘둘러 보이며 매를 다루는 법에 대해
시범을 보였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형리의 시범에 따라 곤장을
휘둘러 보았다. 휘익 - 하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에
형틀에 묶인 아낙이 찔끔하고 레미톨레이마이어스를
쳐다보았다.
"자, 그럼 남은 형장을 집행하도록 하시지요."
형방이 레미톨레이마이어스에게 재촉했다. 그리곤
레미톨레이마이어스의 귓가에 속삭였다.
"남은 매는 석대요. 하지만 경험을 충분히 해보자면
그것으로 모자랄 터이니 열대를 치도록 하시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깜짝 놀라 그럴 수는 없노라
대답했다. 법으로 제정한 형량을 사적으로 늘이고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러나 형방은 완강했다. 매의 대수는 그 정도 가감이
있을 수 있고, 지금껏 그래왔다는 말이었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결국 다시 한번 형방의 말에 수긍하기로 했다.
곤장을 두손에 꼬나쥔 레미톨레이마이어스가 여인의
뒤로 돌아가자 여인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뒤쪽을
돌아다 보았다.
'나리, 제발, 살려줍쇼. 제발 살려주시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한순간 마음이 흔들렸으나
곧 생각을 굳게 다잡았다.
'결국 이 여인은 죄인이 아닌가. 나는 이 나라 정부를, 이 나라
국왕을 대신해 형을 집행하는 것 뿐이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천천히 곤장을 오른쪽 어깨 위로 쳐들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매를 여인의 둔부를 향해 내리쳤다.
따아-악
"아아아-악 -"
서양인의 억센 팔에서 휘둘러진 매는 형리의 그것보다
더욱 드셌다. 여인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피를 토하듯
비명을 질러댔다.
더군다나 형방과 레미톨레이마이어스가 서로 옥신각신 하는 동안
매질이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지는 바람에 그 아픔은
더했다.
따아악 -
"어흐흡, 제발 나으리, 쇤네 죽사옵니다."
철써억 -
"어흐흐흐흐 -"
결국 열대의 매가 모두 찼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매를 내려놓고 이마에 맺힌 땀을 소매로
훔쳐내었다.
"욕봤소이다."
형방이 레미톨레이마이어스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도합 마흔 일곱도의 모진 매를 맞은 여인은 이미 반쯤은 죽은
목숨으로 보였다.
매를 맞기 전에 보였던 독기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가엾은 사슴처럼 어깨숨을 간신히 흐읍 흐읍 내쉴 뿐이었다.
"저년을 옥사로 데려가거라"
형방의 말이 떨어지자 나졸들이 여인을 형틀에서
떼어내어 옥사로 끌고 갔다.
여인은 눈을 감은 채 그르릉 그르릉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도살장에서 죽어 나오는 소마냥
맥을 놓고 끌려가고 있었다.
형리의 거친 손으로 대충 치켜올려진
속곳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아마도 죄인이 다시금
걸음을 걸을 때까지는 제대로 치료를 받는다 해도
두어달은 족히 걸릴 일이었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형방에게 한 꾸러미의 돈을 쥐어주었다.
오늘 보여준 호의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그리고 이에 약간의 돈을 더 얹어 주어 아낙의
약값에 써주길 부탁했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사채에 들러 사또에게 사례한 후
이방과 형방의 전송을 받으며 관아를 나섰다.
하늘을 보니 이미 태양은 중천을 한참 지나 사선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문득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허기를 느꼈다.
집을 향해 걸으며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자신의 두손을
내려다보았다.
지아비를 배신한 더러운 여인을 친히 벌한 자신의 두손이었다.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웬지 스스로 자랑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국을 떠올렸다.
사치와 향락에 빠진 상류층의 귀부인들,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저 세상물정 모르는 여인네들이여,
파티와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만이 전부인 머릿속이 텅 빈 귀하신 몸들,
젊은 하인과 더러운 관계를 맺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저 파렴치한 백작, 후작 부인이여 ….
레미톨레이마이어스는 이 모든 여인들을 이곳 조선으로 데려다
형틀 위에 꽁꽁 묶어놓고 볼기가 터지도록
물볼기를 치고싶은 강렬한 욕구에 사로잡혔다.
그리고는 노트를 펴들고 길 위에 서서 빙긋이 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完>